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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을

9월의 시 모음 - 가을에 관한 시 12편

by LABOR 수달김수달 202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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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 모음 - 가을에 관한 시 12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9월은 찬란했던 여름을 뒤로하고, 조용히 성숙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뜨거움이 식고, 열매가 영글어가며, 삶도 문득 깊어지는 시간. 이번 글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오롯이 담은 9월의 시들을 모아 9월의 시 모음을 소개합니다. 각 시마다 시인의 고유한 감성과 언어가 담겨 있으며, 계절의 변화 속에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의 힘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해인 시인의 9월

9월의 기도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 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이 시는 계절 앞에서의 겸허한 기도입니다.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을 맞이하길 바라며, 사랑이 더 깊어지길 기도합니다. 짧은 문장 속에 깊은 명상과 평안을 전합니다.


가을 편지 1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자연의 소박한 요소, 도토리 하나가 시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리움과 용서, 그리고 기도의 정서가 어우러진 깊은 시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9월

9월이 오면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사랑과 인생, 공동체와 자연을 잇는 이 시는, 9월이 사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계절임을 일깨웁니다.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가'라는 시구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조병화 시인의 9월

9월의 시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무겁고도 가벼운,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는 인간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그린 시입니다. 비치파라솔이라는 상징을 통해 여름의 끝자락을 우아하게 묘사합니다.


이채 시인의 가을 감성

9월의 노래

나도 한때 꽃으로 피어
예쁜 잎 자랑하며
그대 앞에 폼 잡고 서 있었지

꽃이 졌다고 울지 않는다
햇살은 여전히 곱고
초가을 여린 꽃씨는 아직이지만

꽃은 봄에게 주고
잎은 여름에게 주고
낙엽은 외로움에게 주겠네

그대여!
빨간 열매는 그대에게 주리니
내 빈 가지는 말라도 좋겠네

자연의 변화에 자신을 투영한 시인의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가을 나무의 무심한 듯 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중년의 가슴에 9월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이여!
강산에 달이 뜨니
달빛에 어리는 사람이며!
계절은 가고 또 오건만
가고 또 오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여!

내 당신 사랑하기에
이른 봄 꽃은 피고
내 당신 그리워하기에
초가을 단풍은 물드는가

낮과 밤이 뒤바뀐다 해도
동과 서가 뒤집힌다 해도
그 시절 그 사랑 다시 올리 만무하니
한 잎의 사연마다 붉어지는 눈시울

차면 기우는 것이 어디 달뿐이랴
당신과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당신과 나의 삶이 그러하니
흘러간 세월이 그저 그립기만 하여라

사랑과 그리움, 중년의 회한이 녹아든 시입니다. 계절과 감정의 흐름이 절묘하게 맞물려 깊은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 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 향기에 실려 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

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이 시는 자신을 낮추고 사라지듯 피는 들꽃에 빗댄 고요한 존재의 표현입니다. 9월이라는 계절 속에서 익명의 아름다움을 갈망합니다.


기타 시인들의 9월

9월의 약속 -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우리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9월 - 목필균

9월이 오면
앓는 계절병

혈압이 떨어지고
신열은 오르고
고단하지 않는 피로에
눈이 무겁고

미완성된 너의 초상화에
덧칠 되는 그리움

부화하지 못한
애벌레로 꿈틀대다가
환청의 귀뚜리 소리 품고 있다

현실의 몸과 정신이 계절을 앓듯 겪는 생리적 변화와 감성의 동요를 독특한 감각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9월 -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9월의 사랑채에서 - 이영지

하늘이 하늘만큼 높아 그래서요
아리랑 아이리랑 구월을 꽃피워요
죽으면 안 되니까요 코스모스 피워요

국화꽃피워봐요 구하고 싶어서요
꽃이랑 꽃이랑요 모두를 구하고파
모두를 살려달라고 노오랗게 피워요

마지막 이별이라 아리랑 아라랑
늦어도 한참 늦어 서둘러 피워요
늦어도 한참 늦어도 꽃이라면요 모두요

무명의 시인이라 더욱 빛나는 이 작품은 가을꽃을 통해 생의 긍정과 간절한 기도를 담아냅니다.


맺음말

9월은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계절과 감정이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시인들은 이 시간을 다양한 언어와 정서로 노래합니다. 이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9월을 가만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한 켠이 조용히 물드는 가을, 이 시들이 좋은 벗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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