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歌詩): 시가 익어가는 9월의 마음으로 9월의 시 모음 2)
9월은 여름과 가을이 포개어지는 계절입니다.
낮에는 여름의 뜨거움이 남아 있지만,
그늘진 오후와 저녁에는 가을의 숨결이 번져옵니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지만,
그 속에 스미는 바람은 다릅니다.
무언가가 천천히 멀어지며,
또 다른 것이 조용히 다가옵니다.
이러한 시간의 결, 감정의 물결을 가장 섬세하게 담아내는 언어,
그것은 바로 시(詩)입니다.
시인은 계절을 찢어내지 않고 조용히 펼쳐 보여주며,
그 안에 녹아든 우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9월’을 주제로 한 시들을 모아,
가을의 빛깔과 감정, 그리고 시인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각 시는 전문 인용 형식으로 소개하며,
그 뒤에는 감상평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9월이 익어가는 시간,
우리의 마음도 시 한 줄에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안도현 시인의 9월
9월이 오면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감상 및 해설
‘9월이 오면’은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사랑의 넓은 의미를 강조합니다. 강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흐르는 삶과 그 안에 스며드는 공감과 나눔의 가치를 되새깁니다. “우리 둘만의 사랑이 아닌”, 남겨줄 사랑에 대한 성찰이 울림을 줍니다.
시인 프로필
- 안도현(1961~): 대표작 연어, 간절하게 참 철없이, 너에게 묻는다.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감성, 서정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시에 담아냅니다.
오광수 시인의 9월
9월의 약속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우리 손 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않는 하나를 위해!
감상 및 해설
이 시는 가을 하늘 아래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의 약속을 주제로 합니다. 관계의 거리를 줄이는 것, 마음을 환히 드러내는 용기, 그리고 그것이 열매가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그렸습니다. 9월의 푸른 하늘은 배경이자 다짐의 증인입니다.
오세영 시인의 9월
9월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감상 및 해설
삶과 죽음, 기다림과 성숙이 교차하는 9월. 오세영 시인은 코스모스를 통해 인생의 유한함과 영적 통찰을 은유합니다. '하늘이 열리는 달'이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며, 죽음과 만남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인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인 프로필
- 오세영(1942~): 국립대 교수,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철학적 시인. 대표 시집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꿈꾸는 자는 길을 묻지 않는다.
9월의 시 모음을 정리하며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9월이라는 계절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태주의 사과처럼 익는 사랑, 오세영의 삶과 죽음의 문턱, 안도현의 강물처럼 흐르는 공동체적 사랑, 류시화의 숲과 고요의 사색, 헤세의 정적과 영혼의 투영, 그리고 함형수의 슬픔이 깃든 이별의 계절까지.
9월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시집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이 시들은 매년 9월이 올 때마다 우리 곁에 돌아와 감정을 정돈하고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시의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의 시 모음 (0) | 2025.09.02 |
---|---|
9월의 시 모음 - 가을에 관한 시 12편 (0) | 2025.08.24 |
여름 8월의 시모음 (0) | 2025.08.04 |
8월의 시모음 (0) | 2025.08.02 |
이별 시모음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짧은 이별 시 (0) | 202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