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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을

겨울 편지,겨울 길을 간다,겨울 아가 1 2,겨울 엽서,겨울 산에서 ,다시 겨울 아침에,겨울연가 이해인 수녀 겨울 시 모음

by LABOR 수달김수달 2023. 11. 15.

목차

    이해인 수녀님의 겨울 시 모음

    겨울바다 / 이해인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겨울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바다를 본다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일 때
    기도가 되지 않는 답답한 때

    아무도 이해 못 받는 혼자임을 느낄 때
    나는 바다를 본다

    참 아름다운 바다빛 하늘빛
    하느님의 빛

    그 푸르디푸른 빛을 보면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이 길게 물 흐르는 바다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겨울편지 /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 본다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겨울 아가 1 / 이해인

    눈보라 속에서 기침하는
    벙어리 겨울나무처럼
    그대를 사랑하리라

    밖으로는 눈꽃을
    안으로는 뜨거운 지혜의 꽃 피우며
    기다림의 긴 추위를 이겨 내리라

    비록 어느 날
    눈사태에 쓰러져
    하얀 피 흘리는
    무명(無名)의 순교자가 될지라도
    후회 없는 사랑의 아픔
    연약한 나의 두 팔로
    힘껏 받아 안으리라

    모든 잎새의 무게를 내려 놓고
    하얀 뼈 마디 마디 봄을 키우는
    겨울나무여

    나도 언젠가는
    끝없는 그리움의 무게를
    땅 위에 내려 놓고 떠나리라

    노래하며 노래하며
    순백(純白)의 눈사람으로
    그대가 나를 기다리는
    순백의 나라로
    겨울 아가 2 / 이해인

    하얀 배추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헛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겨울산에서

               이해인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겨울 엽서 - 이해인

    오랜만에 다시 온
    광안리 수녀원의
    아침 산책길에서
    시를 줍듯이
    솔방울을 줍다가 만난
    한 마리의 고운 새

    새가 건네 준
    유순한 아침인사를
    그대에게 보냅니다

    파밭에 오래 서서
    파처럼 아린 마음으로
    조용히 끌어안던 하늘과 바다의
    그 하나된 푸르름을
    우정의 빛깔로 보냅니다

    빨간 동백꽃잎 사이사이
    숨어 있는 바람을
    가만히 흔들어 깨우다가
    멈추어 서서 듣던 종소리

    맑음과 여운이 하도 길어
    영원에까지 닿을 듯한
    수녀원의 종소리도 보내니
    영원한 마음으로 받아 주십시오
    다시 겨울 아침에 - 이해인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겨울 연가

                                     이해인 / 수녀.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
    네가 있는 곳에도
    눈이 오는지 궁금해
    창문을 열어본다

    너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쏟아지는 함박눈이다
    얼어붙은 솜사탕이다

    와아!
    하루 종일
    눈꽃 속에 묻혀가는
    나의 감탄사

    어찌 감당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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