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9월의 시 모음-가을의 기도, 가을에 관한 낙엽 시 -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엔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이채, 9월의 시 문병란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엔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 이채
가을엔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하소서 – 이채
가을엔 마음의 등불 하나 켜 두게 하소서
하루의 아픔에 눈물짓고
이틀의 외로움에 가슴 쓰린
가난해서 힘겨운 나의 이웃이여!
그 가녀린 빛이 무관심의 벽을 넘어
우리라는 이름의 따뜻한 위로가 되게 하소서가을엔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참아낸 긴 시간들이 알알이 익어갈 때
우리 살아가는 인법도 이와 같아
인내와 믿음과 기다림의 눈물 없이
어떻게 사랑을 말할 수 있으리오가을엔 따뜻한 가슴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같은 비바람을 거치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나무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위하여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누구를 위하여
건강을 잃고 신음하는 그 누구를 위하여가을엔 비움의 지혜를 깨닫게 하소서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기보다
지는 낙엽의 겸허함을 바라보게 하소서
욕망의 늪은 그 깊이를 모르고
욕심의 끝은 한이 없나니
하늘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 이채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 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 향기에 실려 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삶과 낙엽 – 이채
삶과 낙엽 – 이채
낙엽이 떨어져 땅 위로 뒹굴며 말합니다
삶을 이루었노라고
내가 떠나서 거름이 되어야
푸른 녹색 정원을 이룰 수 있다고나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삶이 다할 때
삶을 이루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후세에게
나의 삶이 과연 거름이 될 수 있을까내게 던진 이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낙엽을 밟으며 – 정연복
한철 그리도 푸른빛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던
무성한 잎새들한 잎 두 잎 쓸쓸히
낙엽으로 지면서도알록달록 폭신한 카펫을 깔아
세상을 오가는 이들의 발길 아래
제 마지막 생을 바치네.인생의 사계(四季) 중
어느 틈에 가을의 문턱을
훌쩍 넘어섰으니이제 이 목숨도
낙엽 되어 질 날
그리 멀지 않았으리.지나온 세월이야
더러 회한(悔恨)으로 남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일내 생의 나머지는
그 무엇을 위해 빛나다가
고분고분 스러져야 하는가.휘익, 한줄기 바람이 불어
몇몇 남은 잎새들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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